선지와 현지, 두 자매가 간만에 만나 또 신경질을 벌이고 있을 무렵, 문 두드리는 소리가 잠시 상황을 중단하게 만들었다. 언니의 명령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현지는 투덜대며 문으로 향했다. 저 년의 뒷통수를 언제 한번 콱 쥐어박고 말테다, 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동안 선지는 조촐한 제사상을 보며 생각했다. 엄마는 제철과일을 좋아하셨으니까, 딸기를 올리면 되려나? 아니지. 일단 지방을 먼저 적어야겠다. 성함을 한자로 어떻게 쓰더라? 엄명비, 엄명비 여사.
“막내 왔나보다, 가서 열어줘.”
소리에 놀란 선지는 그만 들고있던 붓펜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현지의 비명이었다. 곧이어 혼비백산이 된 현지가 우당당탕 넘어지며 거실로 기어들어왔다.
“왜 그래? 경태는?”
“어후, 뭔 놈의 비가 이리 쏟아져.”
문을 열고 들어온 중년의 여성은 빗방울이 떨어진 어깨를 툭툭 털며 태연하게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듯 자매에게 검은 비닐봉다리를 내밀었다.
“선지야, 이거 받어. 현지, 얼른 양치하고 잘 준비해. 내일 학교들 안갈꺼야? 오늘도 거실에서 자야할거야, 너네 방은 아직 냄새가 안빠져서. 어머, 경태 얜 또 어딜갔어? 니 아빠는 아직도 안들어왔니? 어휴, 이 양반 때문에 내가 늙는다, 늙어.”
싸늘한 분위기가 사이 공백을 메웠다. 현지는 선지의 등 뒤에 서서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선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저쪽도 해당인 모양이다. 중년여성은 두 자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